13일(미 동부시간) 발표된 미국의 1월 소비자물가(CPI)는 월가 기대보다 훨씬 강했습니다. 수치만 높은 게 아니라 인플레이션 상승세가 광범위했습니다. 디스인플레이션의 마지막 마일(last mile)이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힘을 얻으면서 3월 금리 인하 기대는 아예 사라졌고, 시장은 5월이 아닌 6월, 7월 인하를 내다보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금리, 달러가 폭등하고 주가는 급락했습니다. 정말 대선 연도마다 발생했다는 2~3월 뉴욕 증시의 조정이 본격화하는 것일까요?
1월 CPI부터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① 물가 가속화
헤드라인 CPI는 한 달 전보다 0.3%(월가 예상 0.2%, 12월 0.2%), 1년 전에 비해선 3.1%(2.9%, 3.4%) 올랐고요. 에너지와 음식을 제외한 근원 CPI는 전월 대비 0.4%(0.3%, 0.3%), 전년 대비 3.9%(3.7%, 3.9%) 올랐습니다. 월가 예상보다 전반적으로 높았고, 전월 대비 상승률은 12월보다 더 가속했습니다.
근원 물가의 지난 3개월 치를 연율로 환산하면 연 4%로 12월(연 3.3%)보다 상승세가 거세졌고요. 6개월 치를 연율로 환산해도 3.7%로 12월(3.2%)보다 훨씬 높아졌습니다.
제롬 파월 의장은 지난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기자회견에서 "인플레이션 가속화는 위험이지만 더 큰 위험은 2%보다 의미 있게 높은 수준에서 고착화되는 것"이라고 지적했었는데요. 그런 조짐이 나타난 것이죠.
② 광범위한 서비스 인플레이션
세부 내용을 살펴보면 상품 물가 하락은 이어졌습니다. 중고차가 한 달 만에 3.4% 급락했고 의류도 0.7% 떨어졌습니다. 에너지도 0.9% 하락세를 보였고요. 그런데 내린 것은 그게 거의 전부였습니다.
1월 예상보다 높은 물가는 대부분 서비스 물가 강세에서 비롯됐습니다. 지난 11, 12월 두 달 동안 각각 0.4% 상승했던 주거비는 1월 0.6%나 오른 것으로 나타났는데요. 그래서 헤드라인 물가 상승(0.3%)의 3분의 2를 주거비가 차지했습니다. 세부적으로 렌트는 0.4% 상승했지만, 주택소유자의 등가임대료(OER)가 0.6%나 뛰었습니다. 또 의료비가 한 달 만에 0.7%, 항공료가 1.4%, 자동차 보험료가 1.4% 오르는 등 서비스 물가가 뜨거웠습니다. 정리하면 근원 상품 인플레이션은 -0.3%나 하락했지만, 근원 서비스 인플레이션은 0.7% 올라 16개월 만에 가장 큰 상승률을 기록했습니다. 음식 물가도 0.4% 올랐는데, 그중에서도 외식 물가는 0.5% 뛰었습니다.
파월 의장은 FOMC 기자회견에서 지금까지 디스인플레이션은 상품 쪽에서 비롯됐는데, 앞으로 서비스 쪽에서도 더 많은 진전이 있어야 한다고 밝혔었죠. 그런데 그런 조짐은 전혀 없었습니다.
실제 파월 의장이 주시하는 슈퍼 코어(에너지와 음식, 주거비를 제외한 근원 서비스 물가) 물가는 1월 전월 대비 0.85%나 올라 12월 0.34%보다 크게 가속했습니다. 0.85%는 2022년 4월 이후 가장 높은 것이죠. 전년 대비로도 12월 3.93%에서 1월 4.38%로 반등했습니다.
월가는 전반적으로 우려를 나타냈습니다. 1월 CPI 보고서는 인플레이션과 전투에서 라스트 마일(마지막 단계)이 어렵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일 수 있다는 것이죠.
BMO는 "1월의 '매우 나쁜' (super bad) 인플레이션 보고서는 탄력적인 1분기 경제 성장과 함께 Fed의 걱정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시장의 공격적이고 빠른 금리 인하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1월 CPI는 7월 금리 인하 예측에 훨씬 더 부합한다"라고 분석했습니다.
벤다 리서치의 비자이 파텔 거시 전략가는 "생각할 수 있는 거의 가장 뜨거운 CPI 보고서다. 구성요소의 45%가 전월 대비 0.4% 이상 상승했고, 이는 12월의 28%보다 더 늘어난 것이다. 서비스, 주택, 상품 전반에 걸쳐 인플레이션이 나타났다. 이는 채권, 주식 시장의 모멘텀을 바꿀 수 있다"라고 지적했습니다.
일부에서는 둔화가 예상되는 주거비가 1월 물가 상승분의 3분의 2를 차지했다는 점, 특히 OER이 '이상하게' 급등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디스인플레이션 추세가 이어질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캐피털 이코노믹스는 "1월 강력한 근원 CPI의 0.4% 증가는 '라스트 마일이 가장 어렵다'라는 이야기의 근거로 쓰일 것이다. 그러나 예상보다 크게 올라 '매우 의심스러운' OER을 제외하고는 여전히 인플레이션 요인은 많이 보인다"라고 주장했습니다.
르네상스 매크로는 "임대료와 OER 사이의 격차가 커지고 있다. OER은 다가구 주택 임대료 둔화 추세에 덜 민감할 수 있지만 어쨌든 둘 사이의 격차는 심상치 않다"라고 지적했습니다.
판테온 이코노믹스는 "OER은 유틸리티 비용 변동에 따라 (불완전하게) 조정된 임대료다. OER과 임대료는 한두 달 다른 모습을 보일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같은 추세를 나타낸다. 임대료 상승세는 둔화하고 있다. OER이 그걸 뒤따를 것이고 그래야 한다"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1월 렌트는 0.36%(0.4%) 상승해 2021년 8월 이후 가장 작은 상승률을 보였다고 강조했습니다.
오늘 월가 금융사 대부분이 근원 CPI가 0.3% 안팎 오를 것으로 예측했었는데요, 골드만삭스가 0.38%로 가장 높은 수치를 예상했었습니다. 실제 데이터는 0.39%로 나왔죠.
골드만삭스는 "1월 CPI가 예상보다 높게 나온 건 (1월에 가격을 올리는) 1월 효과와 OER 탓이다. 1월에는 치솟았지만 2월에는 '정상화'될 것이다. 단독주택 시장 반등으로 인해 OER 상승세 중 일부가 지속할 수 있지만, 비주택 분야의 서비스 인플레이션은 연초 가격 인상이 다 이뤄졌기 때문에 2월부터 정상화될 것으로 본다. 즉 의료 서비스, 자동차 보험 및 수리, 어린이집 등 노동 의존적 카테고리에서의 연초 가격 인상이 1월 CPI에 크게 반영되었고, 이러한 카테고리의 인플레이션은 2월과 3월 이전 추세로 되돌아갈 것으로 가정한다. FOMC가 3월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유지하고 5월에 인하를 시작할 것으로 계속해서 기대한다"라고 밝혔습니다.
웰스파고는 "월별 인플레이션 데이터는 시끄러울 수 있으며, 특히 기업이 연초 가격을 조정하는 1월에는 계절 조정 과정에서 항상 소음이 나타난다. 우리는 인플레이션이 앞으로 몇 달 안에 하락세를 재개할 것으로 예상한다. 그렇긴 하지만, 오늘 CPI 보고서는 2% 인플레이션으로 돌아가는 길에 약간의 구멍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상기시켜 주며, 조기 금리 인하에 대한 회의론을 가진 FOMC 매파에 힘을 싣는다. 지금부터 5월 FOMC 회의까지 2개의 CPI 보고서가 더 있고 다른 많은 데이터도 나오지만, 첫 번째 금리 인하 시기는 여름으로 미뤄질 위험이 있다"라고 밝혔습니다.
1월 CPI는 Fed가 원하는 수치는 아니었을 것입니다. 'Fed의 비공식 대변인'이라고 불리는 월스트리트저널(WSJ)의 닉 티미라오스 기자는 'CPI가 Fed에 의미하는 것'에 대해 ⑴ 3월 인하는 이미 사라졌고 이제 더욱 그렇다 ⑵ 디스인플레이션이 상품을 넘어 확대되고 있다는 징후를 보고자 했던 Fed 위원들은 그 반대 결과를 얻었다고 정리했습니다.
CPI가 발표된 뒤 시카고 상품거래소 Fed워치 시장에서의 5월 인하 베팅은 전날 60%에서 오늘 35% 수준으로 급감했고 6월 인하 베팅은 92%에서 75% 수준으로 떨어졌습니다. 첫 인하 시기에 대한 예상이 5월이 아니라 6월로 늦춰진 것이죠.
기준금리 인하 시기가 늦춰지자 시장 금리와 달러는 크게 뛰었습니다. 뉴욕 채권시장에서 미 국채 2년물 수익률은 한때 20bp 가까이 오른 4.664%까지 치솟기도 했고, 10년물은 15bp가량 오른 4.318%까지 뛰기도 했습니다. ICE 달러 인덱스는 0.75% 뛴 104.95로 올랐습니다. 작년 말 99.57까지 떨어진 뒤 5%가량 상승한 것이죠.
뉴욕 증시의 주요 지수는 0.3~2%에 달하는 급락세로 거래를 시작했습니다. 내림세는 시간이 갈수록 거세졌습니다. 결국, 다우는 1.35%, S&P500 지수는 1.37% 내렸고 나스닥은 1.80% 떨어졌습니다. UBS의 브라이언 로즈 이코노미스트는 "CPI 데이터는 S&P500 지수를 5000 이상으로 끌어올리는 데 도움이 되었던 일련의 인플레이션 데이터와 골디락스 시나리오를 혼란에 빠뜨렸다"라고 말했습니다. 인디펜던트 어드바이저의 크리스 자카렐리 전략가는 "인플레이션이 여전히 문제라면 채권은 너무 비싸다. 금리가 장기적으로 높아진다면 증시는 계속 상승세를 유지할 수 없다. 특히 Fed가 금리 인상을 완전히 마쳤다는 가정이 잘못된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엔디비아는 개장 직후 3% 넘게 떨어졌다가 장중 플러스 전환하기도 했습니다. UBS에서 오는 21일 4분기 실적 발표를 앞두고 목표주가를 850달러로 높인 덕분입니다. 그러나 AI 붐도 오늘 CPI 충격을 극복하지는 못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2.37%) 메타(-1.51%) 엔비디아(-0.37%)를 포함해 ARM(-19.46%) 등 최근 급등한 AI 주식까지 하락세를 보였습니다. 또 금리에 민감한 DR호턴(-3.99%) 등 주택 건설업체, 뉴욕커뮤니티뱅크(-5.17%) 등 지역은행도 급락했습니다.
소형주 중심의 러셀 2000지수는 3.96% 떨어졌습니다. 긴축 정책으로 인해 경기가 둔화하고 있는데, 계속 높은 금리가 유지된다면 결국은 경기가 나빠지면서 중소기업들의 이익 개선이 어려워질 수 있으니까요.
일부에선 다시 경착륙 가능성까지 제기하고 있습니다. TS롬바드는 "일종의 경기침체 없이는 인플레이션 2%로 돌아갈 수 없다. 1월 CPI 데이터와 서비스 인플레이션 가속화가 이런 사실을 증언한다"라고 지적했습니다.
전미자영업연맹(NFIB)이 발표한 1월 중소기업 낙관지수에서는 이런 상황이 그대로 나타났습니다. 지수는 12월 91.9에서 1월 89.9로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판매 기대가 크게 떨어진 데 따른 것입니다. 향후 3개월 동안 판매가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는 답변은 순(net) 기준으로 -4%에서 -16%로 낮아졌습니다.
웰스파고는 "약한 중소기업 낙관론은 1월 소비자 신뢰가 눈에 띄게 증가한 것과 상충된다. 이런 차이는 기업이 여전히 높은 투입 비용으로 인해 어렵지만, 소비자에게 전가하기 어려운 상황을 나타낼 수 있다"라고 분석했습니다. 실제 지난 3개월 동안 긍정적 이익을 거뒀다는 중소기업은 12월 -25%에서 1월 -30%로 줄었고요. 판매가를 인상했다는 답변도 25%에서 22%로 감소해 3년 내 최저치를 기록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가격 인상을 예상하는 기업 비율은 33%로 증가해 2023년 11월 이후 가장 많아졌습니다. 가격을 올리려는 기업이 늘고 있다는 건 오늘 CPI 보고서처럼 인플레이션 압력이 완전히 소멸하지 않았음을 드러냅니다. 미국공급관리협회(ISM)가 발표한 1월 서비스업 구매관리자지수(PMI)에서도 지불가격이 12월 56.7에서 1월 64로 치솟은 것으로 집계됐지요.
오후 4시께 미 국채 2년물 수익률은 18.4bp 급등한 4.654%에 거래됐고, 10년물은 14.6bp 오른 4.316%를 기록했습니다. 한 채권 트레이더는 "높은 CPI에 놀라고 금요일에 나올 1월 생산자물가(PPI)에 대한 우려까지 더해지면서 10년물 수익률이 기존 거래범위인 4.2% 상단을 뚫어버렸다. 트레이더들이 다시 어디를 기준으로 잡아야 할지 우왕좌왕하는 가운데 수익률이 더 올라간 것 같다"라고 말했습니다. 10년물은 작년 12월 이후 4.2% 이상에서 마감된 적이 없습니다. 삭소뱅크는 "10년물 수익률이 4.2%의 기술적 저항선을 넘었고 기술적으로 4.4%까지 오를 수 있다"라고 분석했습니다.
더블라인 캐피털의 제프리 건들락 CEO는 그동안 경기, 물가 둔화를 이유로 10년물 수익률이 계속 떨어질 것으로 예측해온 사람입니다. 그는 CNBC 인터뷰에서 지금은 CPI보다 개인소비지출(PCE) 물가가 더 중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원래 Fed가 지켜보는 물가 벤치마크는 PCE 물가라는 것이죠. 사실 오는 29일 발표될 1월 PCE 물가는 CPI보다 낮게 나올 것입니다. 오늘 CPI 상승 주범인 주거비의 비중이 CPI의 절반에 불과하고요. 또 주거비 다음으로 영향을 미친 의료 서비스 물가의 경우 PCE에선 반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건들락 CEO는 "금요일 1월 PPI를 보면 1월 PCE 물가가 어떻게 나올지 꽤 잘 알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PCE 물가를 쓴다 해도 주의해야 할 이유가 몇 가지 있습니다. 홍해 사태로 인한 물류비 상승 영향은 크지는 않겠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언젠가 물가 지표에 드러날 것입니다. 또 미국의 휘발유 가격이 최근 오르고 있습니다. 미국 휘발유 선물 가격인 3월 RBOB 가격은 오늘 0.73% 오른 갤런당 2.384달러에 거래됐습니다. 지난 1월 8일 갤런당 2달러를 바닥으로 19% 상승한 것입니다. 소매 휘발유 가격도 마찬가지입니다. 개스버디닷컴에 따르면 미국의 평균 주유소 가격은 갤런당 3.17달러로 일주일 전보다 5.2센트, 한 달 전보다 9.6센트 올랐습니다. 개스버디닷컴은 "소매 휘발유 가격은 11월 말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아마도 3월까지 30센트 추가 상승할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미국 내 여러 곳의 정유공장에서 다양한 문제로 생산량이 감소하고 있는 데다, 3~4월부터는 여름 드라이빙 시즌을 앞두고 휘발유 재고를 쌓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월가의 한 관계자는 "조정이 본격화한다면 그동안 많이 오른 빅테크 주식 위주로 투자자들이 일부 차익실현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투자자들이 평소보다 많이 보유한 주식 대부분이 빅테크 주식이라는 것이죠.
이는 뱅크오브아메리카의 2월 글로벌 펀드매니저 서베이(FMS) 결과에서도 나타납니다. 2~8일 실시된 이 조사에는 5680억 달러의 자산을 관리하는 209명의 펀드매니저가 참여했습니다.
투자자들은 1월보다 포트폴리오 내 현금비중을 55bp 줄여서 4.2%까지 떨어뜨렸습니다. 주식 등을 많이 샀다는 얘기죠. 통상 현금 비중이 4%에 달하면 매도 신호가 발생합니다.
이들은 미국 주식에 대한 노출을 2021년 11월 이후 가장 높게 증가시켰습니다.
특히 기술주에 대한 배분은 2020년 8월 이후 최고 수준으로 나타났습니다.
펀드매니저들은 가장 붐비는 거래로 매그니피센트 7(61%), 중국 주식 매도(25%), 일본 주식 매수(4%), 현금 매수(2%) 및 투자 등급 회사채 매수(1%) 등을 꼽았습니다.
중국 주식에 대해선 비관론이 여전히 팽배했습니다.
이들은 가장 큰 꼬리 위험으로는 높은 인플레이션, 지정학, 시스템적 신용 사건, 경제 경착륙, 미국 선거 및 중국 은행 위기 등을 꼽았습니다.
이들은 인플레이션이 하락할 것으로 예상한 반면, 가격 인상 압력이 높아질 것이라고 예상한 응답자는 7%에 불과했습니다.
투자자 중 약 65%가 경제 연착륙을 예상한 반면, 경착륙 가능성은 11%로 낮아졌습니다.
이들의 약 41%는 대형 성장주가 주식 시장을 주도할 것으로 예상했으며, 18%는 소형 성장주가 상승세를 이끌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뉴욕=김현석 특파원 reali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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