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5월 소비자물가(CPI)가 3년 내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미 중앙은행(Fed)은 점도표에서 올해 한 번 만의 기준금리 인하를 중앙값으로 제시했습니다. 그래서 뉴욕 금융시장은 약간 혼란을 겪었습니다. 이런 혼란은 13일(미 동부시간) 아침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습니다. 아침에 발표된 5월 생산자물가(PPI) 등 경제 데이터들이 올해 한 차례 넘는 금리 인하가 있을 것이란 투자자 믿음을 높여준 덕분입니다. 제롬 파월 의장이 여러 차례 강조했듯 Fed는 '데이터 의존적'이고 데이터만 순조롭게 나온다면 금리를 내릴 것입니다. 채권 금리는 사흘째 하락세를 이어갔습니다. 5400 고지를 돌파한 S&P500 지수도 행진을 계속했습니다. 높아진 밸류에이션, 좁아진 시장의 폭에도 AI 주식들은 지속해서 시장을 끌어올렸습니다.
5월 PPI는 CPI만큼이나 예상보다 훨씬 낮게 나왔습니다. 헤드라인 수치가 한 달 전보다 -0.2% 하락했고요. 1년 전에 비하면 2.2%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4월에는 0.5%, 2.2% 올랐었고요. 월가 예상은 0.1%, 2.5%였는데 그보다 훨씬 낮았죠. 상품과 서비스 분야로 나눠보면 상품 물가가 0.8% 하락해 작년 10월 이후 가장 큰 폭으로 내렸습니다. 거의 60%는 휘발유 가격이 7.1%나 내린 덕분이었습니다. 서비스 물가는 전월과 같은 수준(0%)이었습니다.
찰스 슈왑의 캐시 존스 채권 전략가는 "PPI를 분석하면 에너지 가격은 급락했고 그 외 다른 요인은 거의 0% 수준의 물가를 보였다. 인플레이션 압력은 없어 보인다"라고 말했습니다. 최종 판매뿐 아니라 모든 단계에서 물가가 하락하면서 파이프라인의 물가 압력이 훨씬 완화되었음을 나타냈다는 것이죠. 판테온 이코노믹스는 "5월 PPI 수치는 디스인플레이션이 다시 궤도에 오르고 있다는 더 많은 증거를 더하고 있다. 9월에 있을 첫 번째 금리 인하를 포함한 올해 여러 번의 인하를 위한 기반을 제공한다"라고 분석했습니다.
요즘 월가가 PPI를 열심히 살펴보는 이유는 Fed의 물가 벤치마크, 개인소비지출(PCE) 물가 계산을 위한 것입니다. 대부분 CPI 요인들이 반영되지만, 몇 가지는 PPI 구성요소를 쓰기 때문인데요. 이런 PPI 요인들이 5월에 약세를 보였습니다. 항공료는 -4.3%, 포트폴리오 서비스 비용은 -1.8% 하락했고요. 의사 진료비는 변동이 없었고 병원 외래 진료비는 0.5% 올랐습니다.
씨티그룹의 앤드루 홀렌호스트 이코노미스트는 "인플레이션 둔화만으로도 Fed가 9월 정책 금리를 인하하도록 설득하기에 충분할 것이다. 파월 의장의 발언과 Fed 위원들의 경제전망은 중앙은행이 추가 완화를 환영할 수 있는 '낮은 기준'을 제시한다"라고 분석했습니다.
JP모건은 "우리는 계속해서 11월에 첫 번째 금리 인하를 예상한다. 그런데 CPI 발표 이후 위험이 12월보다 9월로 조금 더 기울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라고 밝혔습니다.
ING는 "어제 Fed는 올해 가장 가능성 있는 결과는 단 한 번의 금리 인하라고 밝혔지만, 파월 의장은 그게 '계획'이 아니며 데이터 흐름에 따라 조정할 수 있음을 인정했다. 우리는 Fed가 결국 그렇게 하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라고 내다봤습니다.
뉴욕 증시에서는 아침 S&P500 지수는 0.27%, 나스닥은 0.72% 상승세로 거래를 시작했습니다. 다우는 0.01% 약보합세로 출발했고요. 호의적 인플레이션에도 불구하고 시장 분위기는 상대적으로 조용했습니다. 결국, S&P500 지수는 0.23%, 나스닥은 0.34% 상승세로 거래를 마쳤습니다. 다우는 0.17% 하락했습니다. 찰스 슈왑의 네이선 페터슨 파생상품 이사는 "모든 호재가 이미 가격에 반영되어 있다는 생각뿐 아니라 일부 구매자 피로가 반영됐을 수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2분기 어닝시즌이 아직 한 달이나 남아 있어 주가를 더 높일 단기 촉매제가 부족할 수도 있다. 위험/보상은 단기적으로 아래쪽으로 치우쳐 있으므로 다음주 정도에 평균 회귀가 발생하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라고 덧붙였습니다.
또 오늘 장 마감 뒤 실적을 공개한 어도비도 월가 추정을 뛰어넘었습니다. 주당순이익(조정)은 4.48달러(예상 4.40달러)였고 매출은 53억1000만 달러(예상 52억9000만 달러)로 집계됐습니다. 샌타누 내러옌 CEO는 "어도비는 각종 클라우드 서비스 전반에서 강력한 성장을 통해 53억 1000만 달러의 기록적 매출을 달성했다. 우리의 차별화된 AI 접근 방식과 혁신적 제품 제공은 고객층을 넓히고 사용자에게 더 많은 가치를 제공하고 있다"라고 밝혔습니다. 어도비는 이번 회계연도 가이던스도 높였습니다. EPS는 18.00~18.20달러, 매출은 214억~215억 달러로 전망했습니다. 월가 추정(18.02달러, 214억 6000만 달러)과 비슷합니다.
또 테슬라가 2.92%나 급등했습니다. 일론 머스크가 밤새 X(옛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자신에 대한 "보상 패키지 재승인 안건이 큰 표차(wide margins)로 지지를 받고 있다. 지지에 감사하다"라고 밝힌 데 따른 겁니다. 머스크가 테슬라를 떠날 수 있다는 우려가 사라진 겁니다. 그리고 오후 5시께 테슬라 주주총회에서 보상 패키지 통과가 확정됐습니다.
물론 강세장을 둘러싼 분위기는 좋습니다. 펀드스트랫의 톰리 설립자는 여전히 이달 말까지 S&P500 지수가 5500을 넘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는 인플레이션이 낮아지면서 지수가 급등할 것이라고 주장해왔는데, 실제 그렇게 되고 있지요.
월가에서 가장 높은 S&P500 목표치를 내놓고 있는 곳은 UBS인데요. 조너선 골럽 전략가는 인플레이션 냉각으로 인해 금리 인하가 이루어지면 시장은 5600도 넘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지난 5월 말 5600을 제시한 것은 기업 이익 개선과 꼬리 위험 감소 때문이었다. 이제 떨어지는 인플레이션과 (예상되는) 기준금리 인하는 훨씬 더 큰 상승 여력을 제공한다"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국채 수익률이 계속 떨어지고 이익 예측과 금융여건은 계속 개선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야데니 리서치의 에드 야데니 설립자는 "S&P500 지수가 우리의 연말 목표치인 5400을 넘어섰다. 우리는 2025년 목표인 6000, 2026년 목표인 6500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하게 될 것이다. 요점은 여전히 강세장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FOMO(혼자 뒤처질까 두려워 추격 매수하는 현상)도 지속하고 있습니다. JP모건의 트레이딩 데스크에서는 "고객들은 안전자산을 줄이고 모멘텀 주식 매수에 나서고 있다. 패닉 상태도 없고 위험도 없지만, 고객들은 상승세를 놓칠까 봐 걱정하고 있다"라고 밝혔습니다.
시장 유동성도 좋은 편입니다. 골드만삭스 트레이딩 데스크에 따르면 기업 고객들의 자사주 매입 속도는 통상 평균 수준의 1.6배에 달하고 있습니다. 또 올해 들어 최근까지 글로벌 주식 펀드에 모두 1905억 달러가 유입됐는데요. 이는 사상 두 번째 큰 규모입니다. 강세장이 폭발하던 2021년에 이어서 말이죠. 골드만은 "이는 매일 17억 달러가 유입되고 있음을 뜻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최근 인플레이션 둔화에는 에너지 가격 내림세가 한몫하고 있습니다. 오늘 PPI가 그랬죠.
오늘 국제 유가는 4거래일 연속 올랐습니다. 0.15~0.2% 수준 상승했죠. 그래도 서부텍사스산 원유(WTI)는 배럴당 78.62달러에 거래를 마쳤고요. 브렌트유도 배럴당 82.75달러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시장에선 유가 향방을 놓고 논쟁이 격렬합니다.
씨티그룹은 전기차 채택과 에너지 효율성 향상으로 인한 수요 둔화 및 OPEC 이외 생산 증가로 인해 시장이 ‘상당한 공급 초과'에 진입하면서 유가가 2025년 급락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내년 세계 원유 재고가 하루 140만 배럴 증가함에 따라 브렌트유 가격은 올 4분기부터 하락하기 시작해 2025년 배럴당 60달러까지 떨어질 것으로 봤습니다. OPEC+는 최근 감산량을 점차 줄이기로 했죠. 이에 따라 내년 9월까지 하루 250만 배럴이 시장에 더 나올 수 있습니다. 씨티는 OPEC+가 이런 계획을 취소하더라도 여전히 90만 배럴 초과 공급이 있을 것으로 전망합니다. 북미와 브라질, 가이아나를 중심으로 내년 공급량이 하루 180만 배럴 증가해 하루 90만 배럴로 예상되는 수요 증가를 훨씬 앞지른다는 것이죠. 만약 OPEC+가 감산 축소 계획을 이행한다면 과잉 공급량은 하루 260만 배럴 이상으로 늘어나고 브렌트유는 내년 말까지 배럴당 50달러 아래로 떨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습니다.
어쨌든 지정학적 위기만 없다면 유가는 배럴당 90달러 이하에서 안정세를 보일 것이란 예상입니다.
뉴욕=김현석 특파원 reali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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